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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재소설-한전광시곡] 마지막회-제22화 '최후의 결의'

산경e뉴스 2026. 3. 3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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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여보, 한전이 도대체 뭘 잘못한 건가요?” 해외 조사 과정에서 이 한마디 물음이 이근석 위원장의 귓전을 맴돌았다. 구조개편이든 구조조정이든 그 어떤 이름을 붙이든 간에 기존의 체제 또는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외부의 강력한 충격이 필요하 것인데...
대통령은 물끄러미 이 교수를 쳐다봤다. 그리고 좌중을 잠시 돌아보다 결심이 선 듯 한 마디 내뱉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저는 교수님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회의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한국전력의 배전분할을 비롯한 민영화 계획은 정부의 결정으로 중단됐다.

“실제로 현장을 보고 연구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단단한 체구에 이마의 깊은 주름, 그리고 인자한 미소의 대통령은 전기를 ‘산업의 피’라 부르며 그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국가 기간산업의 민영화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청와대 회의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삽화=AI 응용)

[산경e뉴스] 전력노조 김준형 위원장은 당선 직후부터 민영화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서울의 작은 지부장 출신으로 덜컥 중앙위원장이 되면서 눈앞이 깜깜했다. 누구를 만나야 할지,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답을 찾기 어려웠다.

김 위원장은 집행부 구성부터 무너진 조직 재건을 목표로 했다. 

전임 집행부는 발전분할 반대를 공언하며 파업 선언도 했다. 

한전 사상 초유의 파업이라는 주목을 받았고 국내외 언론에도 크게 보도가 됐다. 

당시 위원장은 파업이라는 무기로 정부의 발전분할을 어떻게 해서라도 유예해 볼 생각이었지만 김대중 정부의 의지는 강했다. 

두 차례의 파업 선언과 두 번의 파업 연기, 그리고 최종적으로 파업 철회 선언으로 전력노조의 파업은 한차례 소동으로 끝났다. 

사상 초유의 한전 파업을 선언했던 오경호 집행부는 2000년 12월3일 파업 선언을 취소하고 정부에 백기 투항했다.

발전소를 중심으로 노조 집행부의 뜻에 따라 파업을 준비하던 조합원들의 배신감은 컸다. 

송배전과 판매 조직의 조합원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력노조의 파업 철회 직후 정부는 국회에서 전력산업구조개편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1년 4월 1일 한전의 발전부문은 6개로 쪼개져서 한전의 품을 떠났다. 

물론 신생 발전회사들의 지분은 모두 한전이 가진 물적분할 형태였고, 이들이 한전이라는 울타리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직원들의 충격은 컸다.

송배전과 판매 조직만 남은 전력노조는 홀쭉해졌다. 

발전회사로 떨어져 나간 직원들은 별도의 노조를 만들었다. 

5개 화력발전회사 직원들은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이라는 소산별 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총의 공공운수연맹에 가입했다. 

한국수력원자력으로 분리돼 나간 직원들 역시 별도의 한수원노조를 만들었다. 그들은 상급단체 가입을 하지 않았다.

2002년 2월 25일 발전노조는 한국노총의 가스노조, 철도노조와 함께 공동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이 내세운 명분은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반대였다. 



출처 : 산경e뉴스(https://www.ske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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